옥승철 (b.1988, KOREA), Broken Lens, 2020, Acrylic on canvas, 120×120cm
옥승철 작가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입시미술의 석고상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이미지들을 컴퓨터 상에서 조합해 재창작한 디지털 원본(vector image)을 만든다. 주로는 작가가 어렸을 때 TV, 영화, 잡지 등으로 접했던 80,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다. ‘헬멧 helmet’ 연작은 록맨, 독수리 오형제, 사이버 포뮬러, 아이언리거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헬멧에서 시작됐고, ‘플라스터 plaster statue’ 연작은 입시미술의 석고상에 일본 만화의 소녀 이미지들이 갖고 있는 유사성을 상징화한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만들어진 벡터 이미지를 다시 회화, 조각, 영상 등 매체의 특성에 기반한 또 다른 원본으로 옮긴다. 이 때 가상의 디지털 원본 이미지가 갖는 ‘무한 복제 가능성’과 회화의 ‘유일성’이 부딪히며 모순적인 긴장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내면서도, 배경이 생략된 클로즈업과 면 처리로 서사성을 최소화하고 있는 얼굴들은 그런 긴장을 더욱 증폭시킨다. 작가의 이런 작업 방식은 현대미술에서 일반화된 이른바 “전용(appropriation)의 예술”이 디지털 정보화 환경에서 얼마나 첨예화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혁명의 파고 아래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자체가 새롭게 틀 지워지고 있으며, 그것이 동시대 현대미술 안에서도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갤러리 기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