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의 내가,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의 내가 천착할 주제란 고민할 것도 없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내가 말하는 좋고 나은 사람과 당신이 생각하는 좋고 나은 사람은 다를 겁니다. 틀린 건 아니고 다를 거예요.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악을 부리지 않고 돈 위에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
(나는 신뢰를 가장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듯 구토가 쏠리는 인간을 삼십 명 정도 알고 있다)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네 편과 내편을 종횡으로 나누어
다투고 분쟁하는 진영논리의 달콤함에 함몰되지 않길 하루하루 소망하는 자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거란 자기 확신은 있다.
나는 신념과 이론이 아닌 좁은 오지랖과 얕은 참을성과 깊은 분노 때문에 이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게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추종할 신념이나 이론이 새삼 생길 리 없고,
그래서 나는 어른스러움이라는 이름의 화장술을 배울 수 있을 리 또한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필요 이상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에서 흐른 고름을 먹고 자존감을 핥으며 의기양양 이름을 팔고 있다.
책임을 다해야 할 일에서 버티고 분투하기보다 도망가기를 먼저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 나는 정말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고 내 선택을 낙관할 수 있을까.
베개맡에 누워 하루 일을 뒤돌아볼 때 ‘~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내가 잘했다’는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200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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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보면 세상의 속살이 드러나 그 추잡함과 헐거움,
촌스러움에 치를 떨게 될때가 있다.
나는 그게 근본적으로 서로 앞다투어 멋지고 잘났고 괜찮고 근사하고 옳다고 믿는
사람들투성이라 초래된 세상이라고 본다.
그것이 체계 안의 인간이기 때문이든, 태생적 한계이든 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고 흠결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자신의 흠결을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부 세계의 그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고쳐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아가 남의 흠결을 공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제일 별로라고 말하고 다닌다.
너도 사실 별로라고 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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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 버티는 삶에 관하여 中